러시아연해주의한인사회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구라 조회 16회 작성일 2020-10-28 08:29:22 댓글 0

본문

러시아, 중앙아시아에는 우리 한민족이 살고 있습니다 (민족의 아픈 역사, 고려인) [문화]

관심 있으신 분이 많다면 고려인 분들 만나러 찾아 가보겠습니다 :D
혹시 영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고려인 분이 계시다면 연락 주세요


고려인, 까레이스키, 카레이즈…
이 단어는 러시아와 중앙아시아에 사는 한민족 혹은 그들의 자손들을 부르는 말입니다

고려인을 모르는 사람은 아직 많이 존재합니다
‘고려인은 고려시대 살았던 사람 아닌가?’

현재는 약 50만 명의 고려인들이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중심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그 외에 사할린 지역, 남부러시아, 러시아 서부, 발트 3국까지 고려인의 공동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이들은 대부분 1800년대 말 극동 러시아에 거주하던 고려인에서 기원합니다

그렇다면,
고려인은 왜 러시아 극동 지역인 연해주로 이주하였을까요?

연해주(블라디보스톡)에서 강제이주되어 러시아 및 중앙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고려인의 이야기
이들 중에는 독립운동을 하던 많은 독립운동가들도 존재합니다
(홍범도,최재형,이상설,안중근 등)


#고려인#독립운동가#고려인강제이주
션월드 지식공간 : 혹시 영상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고려인분'이 계시다면 편하게 연락 주세요 :D
아무 에피소드라도 상관 없습니다
seanworld.official@gmail.com

제보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라면 대댓글 말고 일반 댓글 부탁드릴게요!
댓글 이동이 안되므로 삭제 될 수 있음을 양해바랍니다
이상훈 : 그동안 고려인은 일제핍박을 피해 이주 한 한국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러시아인에 가깝다 하셔서 제 개념이 바뀌었네요.
보봐르남 : 저 해외동포법이 문제가 많습니다. 고려인들이야 인정할 수 있지만 조선족들은 625사변때 김일성군대의 선봉장으로 남침에 참여했던 자들이기 때문에 적군로 봐야 합니다.
박창열 : 고려인들은 받아줘야지
June Psychie : 고려인에게 들었던 얘기인데, 조선족보다 출입국 절차가 힘들다더군요.
J H Hk :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 하세 ~
빨갱이 쒜히들
작두참수 ~
냐옹냐옹 : 민족이란 생물학적 요인보다는 문화적 요인이 더 크게 작용합니다. 언어를 모르면 한국에서 살기도 힘들고 정체성도 많이 차이나서 공유되는 사고가 매우 좁죠. 각자 자신의 생활터전에서 열심히 사는 것이 최상
이슬기 : 안녕하세요! 션월드님:)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댓글 남기게 되었습니다.
최근 외국인들에게 한국 독립운동역사를 재미있게 소개하고자, notion으로 사이트를 만들고 있습니다. (당연히,,! 비영리 목적입니다.ㅎㅎ)
그중에서 고려인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 션월드님의 영상을 함께 첨부하면 좋을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영어 자막까지 첨부되어 있어서, 외국인에게 고려인에 대해서 알리기에 매우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션월드님의 해당 영상을 사이트에 업로드하여도 괜찮을까요?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영혼탈곡기 : 조선족들이 자신들은 동포라고 말하면서 한국에 와서 온갖 패악질을하면서도 스스로 중국인이라고 말하고 있음. 이런놈들은 동포가 아님. 저 멀리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가 됐음에도 뿌리를 잊지 않고 조상들의 고향을 기억하고 돌아오고 싶어하는 저들이 진정한 동포임
윤석정 : 우리 민족은 많은 해외 갈래가 존재하며, 그 중 현재 고려인과 조선족, 에니껭은 본국인으로서 아픔의 상징이다.
이 3갈래의 공통점은 왜정시대라고 볼 수 있고, 특히 러일전쟁때 강제이주를 당한 고려인은 많은 아픔을 주는 반면
제 2의 국난 시기인 6.25 시 조선족의 경우 중공 팔로군의 앞잡이가 되어 남한에 총부리를 익히 겨눈바 있다.
작금에 이르러 본국에 입국하는 고려인과 조선족의 경우 적응에 제 1요소인 언어구사 능력을 볼때 스스로를 중국 인민이라 생각는 조선족이 타 해외인에 비해 상대적 유리한 점이 많다.
강대국에 둘러 쌓여있는 우리로서 앞으로 발발할 수 있는 국난 또는 유사한 사건 발발 시를 대비한 옳바른 자세는 무엇일까!

우리 곁으로 돌아온 고려인 [한민족발자국]

전 세계 180개 나라에 걸쳐 있는 한민족의 이주 역사를 살펴보고, 더 큰 코리아로 나가기 위한 교훈을 찾아보는 한민족 발자국 순서입니다.

80년 전 강제 이주의 고난을 딛고 중앙 아시아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린 이들이 있습니다.

바로 고려인 동포들입니다.

오늘은 IOM(아이오엠) 이민정책연구원의 오정은 박사님과 함께 고려인의 이주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진행: 오 정 은 박사 / IOM 이민정책연구원]
안녕하십니까? 전 세계 180여 개국에서 생활하는 우리 한민족 그 한민족을 이야기하는 시간입니다.

오늘은 그 첫 시간으로 CIS 지역에 사는 고려인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고려인은 누구일까요? 고려인은 과거 소련이라 불리던 그 지역에서 생활했던, 오늘날의 CIS 지역에서 생활하는 한민족입니다. 고려인들이 처음 CIS 지역으로 이주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19세기 말 당시 조선이 굉장히 어려운 상황에서 더 나은 삶을 위해서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많은 농민이 한반도 북쪽에 있는 당시 러시아 땅으로 이주하면서 우리 한민족의 CIS 이주사가 시작됩니다. 당시 많은 한인이 러시아 땅으로 이주했습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언제부터 한민족의 이주가 시작되었는지 명확한 기록은 찾기 어렵습니다. 다만 19세가 말에 많은 한민족들이 이주했고, 특히 1864년 러시아에서 동아시아지역을 조사하면서 1864년 러시아의 라자노프 중위가 우수리 강 주변 한인들이 살고 있다. 한인들이 14가구가 살고 있다고 러시아 정부에 보고서를 쓰면서 당시부터 한민족이 공식적으로 러시아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 밝혀집니다. 1864년이라는 숫자는 우리나라 한인들이 해외로 이주한 공식적으로 확인된 최초의 숫자이고 기록입니다.

우리 고려인의 이주사는 한민족의 전형적인 모습. 계속 더 넓은, 더 나은 삶을 때로는 강요되고 때로는 자신의 선택 때문에 이주해갔던 그래서 전 세계에 흩어져서 사는 한민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연해주에는 점점 더 많은 한민족이 모여듭니다. 일종의 코리아타운이 형성되고, 코리아타운은 점점 많은 사람이 생활하는 중요한 장소가 됩니다. 이곳은 당시 일본의 침략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던 한반도에서, 한반도의 독립을 되찾고자 하는 애국지사들에게 하나의 기회의 땅으로 비쳤고, 연해주는 한반도 독립을 위한 독립운동의 근거지로써 활용됩니다.

당시 많은 애국지사가 연해주에 코리아타운을 기점으로 한반도를 다시 독립시키고자 독립운동을 전개합니다. 당시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사람들은 굉장히 유명한 분들인데요.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분들이 대부분 연해주에서 독립운동 활동을 하셨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의병장인 이범윤, 홍범도, 유인석, 이진용 등 애국지사들 그리고 헤이그 특사로 파견되었던 이상설, 이위종 또 민족교육가였던 이동영, 정순만. 미국에서 활동하고 국민회의를 창간했던 정재관, 이관, 김성무. 식민 회에서 활동했던 안창호, 이종호, 이각, 조성환, 유동열. 민족주의 사학자였던 박은식, 신채호. 애국 계몽운동을 전개하였던 이동휘, 백순, 그 밖에도 연해주의 한인사회를 바르게 이끌어가고자 연해주 한인사회 지도자 역할을 하셨던 최재형, 최봉준, 문창범, 김항만 등 많은 사람이 연해주를 근거지로 한반도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하셨습니다.

하지만 연해주를 근거지로 우리 한민족이 독립운동을 하는 걸 일본이 모를 리 없겠죠. 이것을 눈치챈 일본은 신한촌 참변이라는 한민족 독립운동사에 정말 슬프고, 역사적인 사건을 저지릅니다. 신한촌 참변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러시아와 일본의 사이에 긴장 관계가 형성되면서 이것을 근거로 일본이 우리나라 독립운동의 근거지를 초토화한 사건입니다.

일본과 러시아 적군에 긴장 관계가 극에 달하던 시절. 러시아 적군을 공격한다는 이유로 일본군은 한민족까지 공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빌미로 많은 한민족 애국지사들을 체포하고, 죽인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일본군은 한인들을 체포하고 민간인을 학살했고 한인들의 무기를 몰수하면서 신한촌을 초토화합니다.

하지만 고려인 사회의 어려움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1937년 당시 1차 대전이 끝나고 2차대전의 전운이 감도는 상황, 일본과 독일의 세력이 확장되고 있던 상황 당시 소련 정부는 일본과 독일이 점차 점차 전 세계에서 침략 야욕을 불태우고 특히 동아시아지역에서 많은 일본군이 진출하고 있는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러시아 영역 안에 있는 이민족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봅니다. 특히 연해주 지역에 살고 있던 한인들은 일본의 스파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되죠.

이에 두려움을 가진 소련 정부는 동아시아지역의 한인들을 일본 근처에서 먼 곳으로 이주시킬 계획을 세웁니다. 이것이 1937년 9월 소련 정부가 결정한 극동지역 한인의 중앙아시아 강제이주 결정입니다. 당시 러시아 연해주는 한반도 근처였지만, 소련은 한반도에서 거의 6,000km 떨어진 먼 곳으로 한인들의 강제이주 계획을 세웁니다. 많은 한인을 강제로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이주시킵니다.

이렇게 이주 된 한인들이 18만에서 2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먼 길에 이주당한 당시 많은 한인은 왜 가야 하는지 그리고 언제까지 가야 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련의 명령에 따라서 기차를 타고, 언제 멈출지도 모르는 긴 여정을 떠났다고 합니다. 기차역의 편안한 기차도 아니고 짐처럼 화물칸에 실려서, 짐도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많은 사람이 화물차 안에 꽉꽉 채워진 상황에서 전염병이 돌았고 음식이 부족해서, 죽는 사람이 나타나고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한 달 가까운 여정이 이어졌습니다.

이곳은 고려인이 처음 강제로 이주당해 기차에서 내려졌던 지역입니다. 카자흐스탄의 우슈토베라는 지역이고요. 여기 고려인들이 비석을 만들었습니다. 이곳은 원동, 고려인 입장에서는 먼 극동이 아니라 먼 동쪽, 원동에서 강제 이주 된 고려인들이 1937년 10월 9일에 내려서 1938년 4월 10일까지 토굴을 짓고 살았던 초기 정착지입니다.

처음 기차에 내려진 고려인들은 집도 없고 농사지을 땅도 없는 곳에 그냥 기차에서 내려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10월 추워지는 겨울을 맞으면서 많은 고려인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곳에 땅을 파고 토굴을 파고 그해 겨울을 지냈다고 합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추위와 굶주림에 죽었고, 하지만 살아야 했기에 이 지역에서 토굴을 짓고 살았습니다. 또 현지인들의 도움으로 삶을 연명하면서 다음 해 봄을 맞이했고 이곳에서 농사를 지으며 고려인들은 열심히 사는 민족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여기 사진은 우리 고려인들이 처음 정착지였던 우슈토베 지역에 조성한 한인 공동묘지입니다. 고려인의 역사를 이곳부터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고려인들은 낯선 영토, 척박한 땅과 어색한 농사환경, 그리고 말이 안 통하는 민족들 사이에 섞여 최선을 다해 일합니다. 그리고 이 집단농장에서 생산력이 높고 성실하고 모범적인 농부로 성장합니다.
나아가 열심히 러시아어를 공부해 소련의 시민으로 성장합니다. 2세 교육에 적극적으로 헌신했고, 2세 3세를 거치면서 한민족 고려인들은 소련의 중앙정부에 진출하고, 전문 인력으로서 성장하면서 농부에서 고급인력으로 성장한 모범 민족이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은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한민족에게 어려운 시기를 살아나가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요, 이 과정에 한국어를 상실하는 그런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 우리는 고려인들이 처한 새로운 어려움, 그리고 그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고려인들의 슬기에 관해서 이야기하겠습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 기사 원문 : https://www.ytn.co.kr/_sp/1220_201707061548344144

▣ YTN KOREAN 유튜브 채널구독: https://goo.gl/gcKeTs

▶ [APP] Android: https://goo.gl/6Pg6j3
▶ [APP] iOS: https://goo.gl/Qxm7rz
▶ Facebook : https://www.facebook.com/ytnworld
▶ Website : http://ytn.co.kr/ytnkorean
Woon K : https://www.youtube.com/watch?v=F2VNgH9jb6U
모나니 : 고생 많이 했읍니다

다큐멘터리 한인 이주 까레이스키 러시아 아리랑

다큐멘터리 한인 이주 역사 까레이스키 아리랑

셀수스 협동조합 www.celsus.org 에 무상공유할 수 있는 동영상 등이 있습니다
Paul Lee : please come back to korea.
개콥 : 참 한많은 민족이야
mitsu : 뻔뻔스럽게도 우리나라에 들어와있는 우즈벡 인간들 지금 얼마나 있는거죠 ?
mitsu : 우즈베키스탄인들 이 이정도로 잔략한 인간들이었다는거 정말 몰랐다. 눈물이 난다

... 

#러시아연해주의한인사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1,724건 41 페이지
게시물 검색
Copyright © jobkeioa.or.kr. All rights reserved.  Contact : help@oxmail.xyz